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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클래식/콘서트 감상기

열정은 나이를 모른다 — 성악 동호회 발표회 감상기

by 산책하는 곰 2026. 6. 13.

지난 6월 3일, 고교동창 클래식 감상동호회 친구로부터 육사동기생 성악 발표회 연락을 받고 음악회장을 찾았습니다. 장소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관 2층 강당, 화려한 콘서트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겨운 공간이었습니다.

열정으로 뭉쳐진 동호회 성악실력

육사 출신 동기생들이 모여 만든 성악 동호회의 발표회, 이름은 'RISE UP 음악회'로 이전엔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말 그대로 동기생 4명이 주축이 되어 교회 강당에 피아노와 반주해 주시는 분이 계시므로 이곳에서 열성 있는 동기생들끼리 좋아하는 성악을 하고 지도도 받을 겸 그리고 연마한 솜씨를 약 3, 4개월 간 정기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 동기생들끼리 애용하는 모임입니다. 관객은 가족과 친지, 뜻있는 지인들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전문 연주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됩니다.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만큼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이 더 선명하게 들려왔고, 부르는 사람의 떨림과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곳이 좋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여간 5차례의 발표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그들의 실력이 나날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이날의 연주 목록은 총 12차례에 걸쳐 23곡입니다. 가곡이 절반, 서양 오페라 아리아가 40%, 나머지 찬송가 10%로 구성됩니다.

동기생들의 열정이 뭉쳐서 뜨거운 발표회가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으로 하나가 된 무대 - 동호회 발표회

프로그램 — 이탈리아 아리아에서 한국 가곡까지

프로그램지를 펼치니 이탈리아 고전 가곡부터 오페라 아리아, 한국 가곡, 찬송가까지 14개 순서가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동호회라고는 믿기 어려운 곡목들입니다.

Ombra mai fu(헨델), Amor ti vieta(조르다노), Non ti scordar di me, O sole mio — 이탈리아 성악곡의 대명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군인 출신 분들이 이런 곡들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쌓아왔을지,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무대를 빛낸 곡목들

인생, 그리고 프로벤자의 바다 — 노래 K. E. Y

이날 특히 기대했던 순서는 친구 K. E. Y의 무대였습니다. 먼저 한국 가곡 '인생'을 불렀습니다. 인생의 무게를 담담하게 노래하는 이 곡은 이날의 곡목 중 가장 깊게 마음속에 호소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연주자는 첫 곡으로서 이 곡을 잘 소화해 내어 완성도 높은 독창 솜씨를 들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곡을 들으면서 인생의 뒤안길에 선 연령대들의 회한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슴에 전달되었습니다.

 

이어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Di provenza il mar, il suol(프로벤자 내 고향)'을 불렀습니다. 원래는 바리톤이 부르는 아리아로, 파리의 향락에 빠진 아들 알프레도에게 아버지 제르몽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장면의 노래입니다. "프로벤자의 바다와 땅,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버렸느냐" — 절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선율입니다. 친구가 이 곡을 애창하며 매번 선택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듣기로는 아버지가 엄격한 가운데 친구는 학교까지 먼 길을 자전거로 통학하였으므로 통학하는 길의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고향에 남다른 추억이 있었을 것이므로 감정을 담아내기가 용이하지 않았을까요?

 

▶ Di provenza il mar, il suol — 참고 영상

바리톤 김기훈 - 'Di Provenza il mar, il suol' From Opera 'La Traviata'

4중창 — Caro mio ben과 목련화

4중창 순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조르다니의 'Caro mio ben(나의 다정한 연인)'은 18세기 이탈리아 아리에타로, 성악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가는 곡입니다. "그대 없이는 내 마음이 시들어간다"는 가사처럼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이 군 출신의 건장한 4중창으로 울려 퍼지자 홀 안이 그 울림으로 가득 찹니다.

이어진 목련화는 김동진 작곡의 한국 가곡입니다. 가고파, 봄이 오면으로 잘 알려진 김동진 선생의 작품 중 하나로, 봄날 목련꽃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곡입니다. 이탈리아 아리아에서 한국 가곡으로 넘어가는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지도 선생님 이신희 교수 — 수선화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지도 선생님 이신희 교수의 무대였습니다. 이신희 교수는 이탈리아 유학을 거쳐 예술의 전당 패컬티 콰이어에도 재능기부로 출연하기도 하는 경력의 성악가로, 이 동호회를 성악 지도해 주시며 단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곡목은 수선화 — 역시 김동진이 작곡하고 김동명 시인의 시에 붙인 한국 가곡입니다. 목련화와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 이날 공연에 두 곡 들어간 셈인데, 그것이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흐름이 잘 맞았습니다. 교수님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크레셴도는 특히 일품입니다. 매번 이 음악회에 참석할 때마다 교수님의 가창력을 기대하는 즐거움이 큽니다. 연륜이 쌓인 성악가만이 낼 수 있는 그 깊이가 강당을 가득 채우거든요.

반주를 맡아주신 사모님께

이날 공연 내내 반주를 맡아주신 분은 교회 목사 사모님이었습니다. 14곡 전곡을 쉬지 않고 반주하면서도 단원 한 명 한 명의 호흡에 맞춰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노래를 받쳐주는 반주 없이는 아무도 그들이 완성하고자 하는 그날의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 없는 봉사가 오히려 더 크게 빛나는 무대입니다. 약 3개월 전 발표회 때부터 반주하는 사모님이 독창자에 맞추기보다는 반주 자체의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으로, 독창자의 호흡은 이미 잘 맞으므로 맘껏 연주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독창하시는 분들도 그만큼 박자 맞추기의 긴장에서 벗어난 나 홀로 서기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열정으로 빚은 무대

솔직히 말하면 전문 연주회와 비교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무대에는 프로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삶의 한 귀퉁이에 음악을 심어 두고 꾸준히 가꿔오며 그 기쁨을 여럿에게 나눠주는 갸륵한 사람들의 진심입니다.

군인으로 살아온 분들이 퇴역 후 성악 동호회를 만들고, 발음 하나 음정 하나를 다듬어가며 무대에 서는 일 —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연령 탓으로 고음에서의 성량 확대, 조바꿈의 순발력, 음정 조절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만 이를 커버하는 그들의 열정은 지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솜씨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무대에서 느껴졌습니다. 다음 발표회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