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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클래식/영화배경음악

영화 속의 클래식 ② — 벤허, 그 웅장한 음악의 세계

by 산책하는 곰 2026. 5. 22.

어릴 적 벤허라는 영화가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친구가 자랑삼아 얘기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요. 그때는 영화관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영화를 보러 갈 땐 부모와 함께 모처럼의 가족동반 나들이를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 다시 리바이벌되어 나온 벤허를 몇 차례 보게 되었습니다. 찰턴 헤스톤의  강인한 인상, 어릴 적 친구였던 메살라가 권력과 야망에 눈이 멀어 벤허를 배신하는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 숨 막히는 전차 경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명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병사의 종이로 만들어진 소품인 방패가 휘어지는 장면이 옥에 티처럼 눈에 뜨이기도 하였지만 벤허는 당시의 촬영에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최고의 명화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카데미상을 11개 부문이나 수상한 이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제음악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음악과 클래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난 1편 '영화속의 클래식 ㅡ 이음악을 베토벤이 작곡하였다고?' 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예로 영화 벤허의 음악을 깊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백마가 끄는 전차가 질주하는 장면
영화 벤허의 하이라이트, 고대로마 원형경기장에서 벤허의 전차가 질주하는 장면

 

벤허의 배경음악, 전통 클래식에 버금가는 스케일과 예술적 가치

시대를 초월한 대서사시

1959년 제작된 '벤허(Ben-Hur)'는 루 월리스의 소설을 영화화하였습니다. 로마 제국 치하의 유대 귀족 유다 벤허가 어릴 적 친구 메살라의 배신으로 노예신세가 된 뒤, 온갖 역경을 딛고 복수를 한 후 결국은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대서사의 영화로 상영시간이 길어 중간에 Intermission이 있을 정도의 대작입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당시 제작비만 1500만 달러로 지금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로마의 전차 경주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 1만 5천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고, 촬영에만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기록은 수십 년간 깨지지 않았습니다.

Miklós Rózsa , 로마를 음악으로 재현하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미클로시 로자( Miklós Rózsa )입니다. 그는 벤허를 위해 당시로서는 영화음악으로는 전례 없는 규모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로마시대의 고증을 위해 고대악기와 선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현대 오케스트라로 재현하는 작업에 수개월을 쏟았습니다.

로자는 이미 쿼바디스(1951)와 쥬리어스 시저(1953) 등 고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곡가였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벤허의 주제곡은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입니다. 그는 이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고, 이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무대에서 연주되곤 합니다. 

전차 경주, 스크린 역사상 가장 긴장된 다이내믹한 8분간의 명장면

벤허 하면 누구에게나 떠올리는 명장면이 있지만 이 장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금방 아실 테지요 바로 전차 경주입니다. 벤허와 메살라가 맞붙는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특수효과와 장비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실제 말과 전차로 촬영한 이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내 기억으론 벤허는 백말을, 메살라는 흑말을 몰았던 기억이 있는데 마치 백은 선, 흑은 악을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로자는 이 명장면에 걸맞게 타악기가 쿵쿵 내리치고 금관악기가 표효하는 가운데 현악기가 질주하는 듯한 이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여느 배경음악과 달리 실제로 경기장 안에 들어와 경기를 보는 것 이상으로 심장을 뛰게 합니다.

마치 옛날 아날로그 시대 로마인들이 즐겼던 박진감있는 전차 경주는,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F1 경기에 비유할 만합니다.

                                                           Ben-Hur | Chariot Race | FULL SCENE | Warner Classics

 

행진곡, 그리고 서정과 장엄 사이

그런데 영화 벤허의 배경음악엔 웅장과 박진감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여 재기한 벤허가 고향으로 돌아와 에스더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음악은 다른 색채로 바뀝니다. 7년 만의 귀환, 황폐해진 집 안 어둠 속에서 에스더와 재회하고 어머니 미리암과 누이 티르자의 생사를 묻는 대화에서 음악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조용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바뀌어 흐릅니다.

 

거대한 서사시 같은 스펙터클 영화에 이처럼 따스한 서정적인 선율이 흐른다는 것 또한 영화 벤허의 배경음악이 지닌 다양성의 균형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나환자가 된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지 못하게 에스더가 막을 때,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과 동시에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그 빗속에서 어머니와 누이가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벤허의 마음도 복수의 증오에서 용서와 구원으로 돌아서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오랜 모진 고난과 역경을 딛고 탈출하는 해방과 구원을 격정적이고 장엄하게 노래하며 감동적으로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이처럼 영화 벤허의 음악에는 전차 경주의 박진감뿐만 아니라 로마 군대의 위용을 담은 웅장한 행진곡, 벤허가 노예로 끌려가는 비통함, 예수를 만나는 장면에서 흐르는 조용하고 숭고한 테마까지, 로자는 영화의 모든 장면을 섬세하게 음악으로 받쳐 줍니다.

 

커다란 스펙터클 영화 안에 그토록 서정적인 순간을 묘사하게 해주는 음악이 있다는 것 또한 이 영화가 단순 오락영화가 아닌 명화로 태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받침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벤허의 음악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고 싶은 분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여 사운드트랙 모음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타임테이블이 갖춰져 있어 원하는 장면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벤허의 배경음악을 한꺼번에 이어 들으면 로자의 음악세계를 통해 그의 음악적 역량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벤허 사운드트랙 전곡 시청하기

 

영화보다 오래 살아남은 음악

영화 '벤허'가 개봉된 지 어느덧 60여 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던 분들은 이제 적지 않은 나이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때 스크린을 빛냈던 명우들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찰턴 헤스톤도, 메살라를 연기했던 스티븐 보이드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로자의 음악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매년 어딘가의 오케스트라의 무대에서 연주되고, 처음 듣는 젊은 청중도 그 웅장함에 압도됩니다. 영화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흘러 가지만 음악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다음 영화 속의 클래식 3번째 편에서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 '시네마 천국'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잊을 수 없는 선율을 찾아가겠습니다.

 

참고: IMDb - Ben-Hur (1959), Wikipedia - Miklós Róz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