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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클래식/영화배경음악

영화 속의 클래식 ④ — 닥터지바고, 라라의 테마

by 산책하는 곰 2026. 6. 18.

1965년 영화 닥터 지바고. 제가 본 건 아마 70년대, 지방 극장에 재상영될 때였을 겁니다. 중학생이었으니까요. 눈에 덮인 철길을 기차가 밀어내며 커브를 도는 장면에서 객석이 술렁였던 기억은 지금도 납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함께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라라의 테마입니다. 처음 봤을 때 음악이 귀에 들어왔는지조차 솔직히 기억이 없는데, 지금은 그 설원 장면과 이 선율이 머릿속에서 분리되질 않습니다.

화면보다 음악이 더 오래 남은 셈입니다.

닥터지바고 — 영화 이야기


 

닥터지바고 영화 포스터 또는 설원 장면 스틸컷
닥터지바고(1965) — 데이비드 린 감독의 러시아 혁명기 대서사 로맨스

영화 닥터지바고와 줄거리

데이비드 린 감독의 닥터지바고(1965)는 러시아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대서사 로맨스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야기는 액자 구조로 시작됩니다. KGB 장군 예프그라프(알렉 기네스)가 한 젊은 여성 타냐를 심문하는 장면 — 그는 이 소녀가 이복형 유리 지바고와 라라 사이의 딸일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상이 시작됩니다.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모스크바의 그로메코 가에 입양됩니다. 의사이자 시인으로 성장한 그는 양부모의 딸 토냐와 결혼합니다. 라라(줄리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연인 코마로프스키에게 농락당하는 젊은 여성입니다. 어머니가 자살을 시도하던 날, 왕진 온 지바고가 처음으로 라라를 봅니다.

이 첫 만남 직후 — 어린 지바고 곁에서 발랄라이카 선율이 처음 흘러나옵니다. 라라의 테마가 세상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발랄라이카 첫 등장 장면 보기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전선에 나갑니다. 거기서 간호사로 일하는 라라와 재회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지바고는 모스크바로 돌아오지만 혁명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있습니다. 집은 몰수되고 가족은 우랄 산맥 변두리 바리키노로 떠납니다.

기차는 끝없이 달립니다. 흰 눈이 덮인 시베리아 설원, 철길 양옆으로 눈이 갈라지는 그 장면입니다.

닥터지바고 — 유리야틴으로 가는 기차 여정 (1965)

 

근처 도시 유리야틴 도서관에서 지바고는 라라와 다시 만납니다. 혁명 지도자가 된 남편 파샤와 헤어진 라라, 전쟁과 혁명 속에 표류하는 지바고 —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빨치산에 강제 징집된 지바고는 몇 년을 전선에서 보냅니다. 탈영 후 바리키노로 돌아오니 가족은 이미 프랑스로 떠난 뒤. 그는 라라를 찾아가고, 둘은 눈 덮인 폐가에서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지바고는 이 시절 라라에게 바치는 시를 씁니다.

코마로프스키가 나타나 둘 다 위험하다며 극동으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지바고는 마지막 순간 거부합니다. 라라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코마로프스키에게 맡기고 혼자 남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마지막 이별 장면 보기

 

이후 지바고는 모스크바로 흘러들어 트램 회사에서 일합니다. 어느 날 트램 창밖으로 걸어가는 여인을 봅니다. 라라입니다. 그는 트램에서 뛰어내려 그녀를 쫓으려 합니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심장마비로 길 위에 쓰러집니다. 라라는 그가 쓰러진 것도 모른 채 군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라라는 장례식장에서 지바고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가 바로 곁에 있었다는 것을 그때야 압니다. 얼마 후 라라도 행방불명 —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예프그라프는 타냐에게 지바고의 시집을 건넵니다. 타냐가 발랄라이카를 연주할 줄 안다는 사실을 듣고 — 그녀가 지바고와 라라의 딸임을 확신합니다. 흘러가는 강물 위로 라라의 테마가 울려 퍼지며 영화가 끝납니다.

눈 내리는 배경 속 털모자를 쓴 라라의 모습
닥터지바고(1965) — 라라

 


이 줄거리 곳곳에서 발랄라이카 선율이 따라다닙니다. 그 음악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라라의 테마 — 음악 이야기

작곡가는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 프랑스 출신의 영화음악 거장으로, 이 곡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라라의 테마는 단순한 구조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기 때문에 강렬합니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선율 — 영화음악에서 가장 강렬한 주제음악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악기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발랄라이카 독주로 시작해 현악 트레몰로가 깔리고, 오케스트라가 한꺼번에 합류하는 총주의 울림. 트레몰로 — 현악기가 같은 음을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 — 는 이 곡에서 특히 효과적입니다. 떨리는 듯한 그 음색이 설원의 차가운 공기, 그리고 라라를 향한 지바고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이 곡을 들으면 후벤티노 로사스의 "파도를 넘어서"가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선율 뒤로 애수가 밀려드는 감성이 닮았습니다. 파도를 넘어서가 설렘과 그리움 사이를 오간다면, 라라의 테마는 사랑과 이별 사이를 오갑니다. 오케스트라 총주의 울림도 비슷합니다 — 처음엔 가슴이 열리는 듯 밝게 터져 나오다가, 이내 무언가 아련한 것이 가슴 안쪽에서 밀려옵니다.

닥터지바고 — 라라의 테마 (1965) Stereo/HD


영화음악은 클래식인가

앞서 이 시리즈 첫 편에서 언급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정의는 시기가 아니라 형식과 완성도에 있다고. 관현악 편성, 주제와 발전, 감정의 구조적 표현 — 이 기준을 따른다면 라라의 테마는 클래식입니다.

무엇보다 이 곡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영화 없이도, 장면 없이도 스스로 완결된 음악으로 존재합니다. 그게 클래식의 조건입니다. 참고: 영화 속의 클래식 — 이 곡을 베토벤이 작곡했다고요?


마무리

라라의 털모자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설원 위를 가르며 달리는 열차,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자작나무 숲. 닥터지바고는 그 장면들이 음악과 함께 또렷이 새겨진 영화입니다. 라라의 테마를 다시 들으면, 그 흰 눈 위의 열차가 아직도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