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하스킬- 고난을 이겨낸 피아노의 성녀,모차르트 연주의 정점으로 불리는 클라라 하스킬의 생애와 천재성에 대한 일화,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명반과 영상을 소개합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를 보자, 실망스러웠습니다.구부정한 자세에 희끗희끗한 백발,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 손이 건반 위에 올려지고 첫 악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소련의 피아니스트 타티야나 니콜라예바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카라얀의 존재가 내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최고의 모차르트 연주자를 발견한 것이다.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1895~1960).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척추측만증과 뇌종양, 나치의 박해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건반 위에서 모차르트를 노래한 여인입니다. 화려한 기교보다 순수함으로, 강렬함보다 맑음으로 청중의 가슴을 적신 피아니스트. 오늘은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남긴 클라라 하스킬의 삶과 음악을 들여다봅니다.

클라라 하스킬- 고난을 이겨낸 피아노의 성녀
하스킬의 생애와 천재성 — 신이 질투한 소녀
천재성에 대한 일화
1895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난 클라라 하스킬은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아직 악보도 읽을 줄 모르던 여섯 살 때, 한 번 들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한 악장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그 악장 전체를 다른 조로 바꾸어 다시 건반 위에 재현했습니다. 주변의 어른들은 경악했습니다. 이 일화를 다시 생각해 보면 피아노를 배우기 전이므로 아마도 한번 본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과 절대음감, 그리고 음악에 대한 본능적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천재적 예술감각이 있었다는 얘기이겠지요
일곱 살에 빈으로 이주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한 살에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그녀의 스승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던 코르트가 어린 소녀앞에서 두 손을 든 것입니다. 졸업시험에서는 바이올린 1등 이듬해 피아노에서도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배우 찰리 채플린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살면서 세 명의 천재를 만났다. 아인슈타인 ,처칠, 그리고 클라라 하스킬. 나는 훈련된 음악인이 아니지만 그녀의 터치는 절묘하고 표현은 훌륭하며 테크닉은 비범했다."
음악과 무관한 세계의 유명인이 한 피아니스트에게 남긴 최고의 헌사였습니다. 또한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는 그녀의 연주를 "지구상에 존재하는 완벽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단한 인생 — 병마와 박해를 딛고
그러나 신은 그녀에게 모든 것이 주어진 것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할수록 심해지는 통증. 화려한 데뷔를 꿈꾸던 소녀는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젊음을 보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뇌종양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뇌전증 발작이 반복되었고 실명 위기까지 찾아왔습니다. 1940년대에는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목숨을 건진 채 마르세유를 거쳐 스위스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졸업 후 하스킬은 유럽순회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악화된 척추측만증으로 몇 년간 석고 붕대를 한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1차 대전의 발발은 그나마 쌓아갔던 연주 활동을 중단시켰습니다.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건반 앞에 앉았습니다. 구부정한 자세로, 때로는 발작의 두려움을 안고, 모차르트를 연주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20년대부터 다시 무대에 섰고, 카잘스·에네스쿠 같은 거장들과 실내악을 함께 하며 조용히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1924년에는 뉴욕 데뷔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다시 그녀의 삶을 뒤흔들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하스킬은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 갇혀 목숨을 위협받았고, 가까스로 스위스 브베이로 탈출해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정작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50대에 접어든 이후였습니다. 1947년 런던 필하모닉과 베토벤 협주곡 4번을 녹음하며 본격적인 음반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필립스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비로소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스스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모두가 나를 듣고 싶어 하는 걸까요? 전과 다르게 연주하는 것 같지 않은데."
이 시기 남겨진 일화 하나가 그녀의 비범함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날 스위스에서 연주하기로 했던 호로비츠가 갑자기 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타가 필요했습니다. 하스킬이 나섰습니다. 그녀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단 하루 만에 완전히 암기해 무대에 올랐습니다. 피아노 파트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총보 전체를 머릿속에 담은 채로.
또 한 번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갑작스럽게 연주해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틀 만에 암기해 무대에 섰습니다. 청중은 그녀가 이 곡을 오랫동안 레퍼토리로 가져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만이 그녀의 언어였다 — 건반 위에서 비로소 자유로웠던 클라라 하스킬
모차르트의 모차르트
그녀의 연주 세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일생은 병마는 둘째치고 2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그녀에게 재능을 발휘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스킬이 본격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쉰 살이 넘어서였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전성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10년간의 녹음이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었다면 그녀가 남긴 연주녹음 등의 발자취는 오늘날 음악사를 훨씬 풍성하게 장식하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연주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과장된 감정도, 압도적인 음량도 없습니다. 대신 담백하고 청아함은 어딘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순수함이 있습니다. 아마도 모차르트가 환생하였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모차르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모차르트의 모차르트"입니다.
저는 그녀의 연주를 처음 들은 것이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아는 그 단순한 멜로디가 변주를 거치면서 모차르트 음악이 지니는 담백과 순수함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살짝 비치는 슬픔까지, 그때부터 저는 모차르트 피아노 곡은 하스킬의 연주로 거의 듣게 되었습니다.
음악적 특징요약
하스킬의 연주는 '절제'와 '투명함'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피아노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악보 속에 있는 그대로를 음악으로서 최대한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이런 면은 그가 정석적인 연주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하스킬의 터치는 가볍고 부드럽지만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특히 약음(피아니시모) 처리와 페달링이 뛰어나서 음이 자연스럽게 음악 속에 녹아드는 듯한 느낌입니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하스킬을 들으면 내가 아직 모차르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라고 말할 정도라 합니다.
명반과 연주 영상
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K.466 — 프리차이 지휘 / RIAS 교향악단 (1954)
하스킬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녹음입니다. 모차르트가 단조로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은 27곡 중 단 두곡 뿐입니다. 그중의 하나인 20번 d단조 k466은 베토벤도 젊은 시절 깊이 사랑했던 곡입니다.
하스킬의 연주는 이 곡의 어두움을 결코 무겁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건져 올립니다. 프리차이의 지휘와의 조화가 완벽하여 아직도 이 곡의 기준 음반으로 회자됩니다.
클라라 하스킬 / 페렌츠 프리차이 지휘 / RIAS 교향악단 (1954)
②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454 — 아르튀르 그뤼미오와 협연 (1956)
하스킬과 그뤼미오의 만남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듀오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그뤼미오의 귀족적이고 서정적인 바이올린과 하스킬의 담백하고 순수한 피아노가 어우러지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야말로 천상의 음악이 됩니다. 저는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이것이 모차르트가 원하던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클라라 하스킬 / 아르튀르 그뤼미오 —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454 (1956)
③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378,K454, K.526 전집
클라라 하스킬 / 아르튀르 그뤼미오 —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④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 K.265
모차르트가 파리 체류 시절 작곡한 12개의 변주곡입니다. 누구나 아는 그 선율이 하스킬의 손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들어보시면 이 피아니스트가 왜 특별한지 단번에 알게 됩니다. 클래식 입문자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연주입니다.
클라라 하스킬 —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 K.265
🎧 나의 감상
모차르트의 음악은 표제도 없고 이야기도 없습니다.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결된 순음악(純音樂)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는 듀오가 바로 하스킬과 그뤼미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차르트 피아노 곡만큼은 하스킬의 연주를 주로 듣습니다.유튜브로 자주 틀어놓고 일하거나 쉴 때 배경음악처럼 듣는데도 매번 어느 순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만큼 질리지 않는 연주입니다.
마무리 — 브뤼셀역의 마지막 음표
1960년 12월, 하스킬은 그뤼미오와의 협연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했습니다. 역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5세. 전성기를 맞은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척추측만증, 뇌종양, 뇌전증, 나치 박해, 실명 위기. 이 모든 것을 견뎌낸 그녀가 마지막으로 향하던 곳은 결국 무대였습니다. 음악이 그녀의 삶이었고 삶이 그녀의 음악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하스킬을 통해 200년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녹음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최종업데이트: 2026.04.12)
참고 자료 및 출처
- Peter Feuchtwanger, The Perfect Clara Haskil (www.peter-feuchtwanger.de)
- 나무위키 — 클라라 하스킬
- YouTube 연주 영상 (Mozart Piano Concerto K.466, Violin Sonatas K.454/378/526, K.265)
- Steinway & Sons 아티스트 페이지 (www.steinw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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