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가 말년에 쓴 인터메조 Op.118 No.2. 이 곡이 작곡된 것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클라라 슈만이었습니다. 평생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음표로 옮긴 브람스와, 그가 작곡한 이곡을 가장 깊이 이해한 클라라의 이야기입니다.
브람스는 교향곡과 협주곡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짜 내면은 말년의 짧은 피아노 소품들 속에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음악, 이 글에서는 그 중심에 있는 Op.118 No.2와, 이곡을 가장 먼저 들은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말년의 브람스, 고독 속에 피어난 음악적 일기
1892- 1893년, 브람스는 60세를 넘기고부터는 대형 작품 대신 내밀한 피아노 소품에 몰두했습니다. Op.116부터 Op119까지의 작품들은 "나의 고통의 자장가"라고 불릴 만큼, 절제된 감정과 고독, 회한, 초연함이 스며든 '음악적 일기'와 같습니다.
이 시기 브람스는 빈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한 대로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작은 소품들을 그는 " 고독한 저녁의 친구"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브람스의 서정성이 궁금하시다면 브람스교향곡 3번을 들어보세요)
브람스는 이곡을 완성하자 맨 처음 보낸 사람은 클라라였습니다. 피아니스트이자 평생 사랑해 온 클라라가 이 악보 편지를 읽어주기를 바랐을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클라라, 그녀가 누구이자 어떤 여인인가요

클라라 슈만, 이 곡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사랑이란 이름
이곡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 클라라 슈만입니다. 로베르토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브람스 평생의 뮤즈이자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청년 브람스가 20세에 슈만 부부를 만난 순간부터 그는 그녀를 향한 감정을 평생 가슴에 품게 됩니다.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기간 동안 임신한 클라라를 지킨 것도 브람스였고 슈만의 사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의 경계에 머물렀지만 결코 선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1893년 가을, 브람스는 Op.118 전집악보를 클라라에게 가장 먼저 보냈습니다. 당시 74세였던 노피아니스트 클라라는 답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 이 곡들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Op.118 No.2는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사실로 짐작컨대 이 곡들은 브람스가 평생을 깊이 사랑해 왔던 클라라에게 자신의 마음의 모든 것들을 담아 사랑한 여인에게 보낸 일종의 사랑의 편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마음을 클라라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라고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40년 인연과 브람스-클라라-슈만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으시다면 이 블로그의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메조 Op.118 No.2- 음악적 특징
형식의 전개: A장조- a단조- A장조 도입부에 '느리고 애정을 가지고 연주하라'라고 적혀 있듯이 조용히 전개되다가 중간부에서 단조로 변하면서 어두워집니다. 다시 장조로 바뀌면서 이전 보다 다른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감성적 특징 : 이곡의 음악적 깊이는 화려하거나 격정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평안함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잔잔함 속에는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차라리 체념 같은 '순응'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감성이 그러하듯이 코다에서도 조용히 사라지듯 마무리 되는 것,이것이 바로 브람스의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요약하면 부드러운 3박자의 리듬과 노래하듯 이어지는 서정적인 선율, 브람스 특유의 풍부한 화성이 어우러지며 매우 편안하고 깊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면서도 따뜻한 옛 회상을 떠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주는 위로의 곡이기도 합니다.
브람스 말년 인터메조 모음집 한눈에 보기
브람스는 1892~1893년에 인터메조 중심 피아노 소품을 집중 작곡했습니다. 그중 Op.118이 6곡으로 가장 균형 잡힌 모음집으로 평가받습니다.
① Op.117 — 3개의 인터메조 (1892년)
| 곡번호 | 곡명 | 감상포인트 |
| No.1 | 인터메조 내림마장조 | 스코틀랜드 민요 ‘슬픔의 자장가’. 따뜻하지만 깊은 그리움 |
| No.2 | 인터메조 내림시단조 | 격정적 내면 동요가 조용히 끓어오르는 곡 |
| No.3 | 인터메조 올림다단조 | 체념과 평온이 느껴지는 유려한 마무리 |
② Op.118 — 6개의 피아노 소품 (1893년) 브람스 말년 피아노 소품 중 가장 균형 잡힌 모음집
| 곡 번호 | 곡명 | 감상 포인트 |
| No.1 | 인터메조 a단조 | 어둡고 내성적, 쓸쓸한 분위기의 시작 |
| No.2 | 인터메조 A장조 | 이 글의 주인공. 가장 사랑받는 따뜻하고 깊은 그리움 |
| No.3 | 발라데 g단조 | 6곡 중 유일한 발라데. 극적이고 어두운 드라마 |
| No.4 | 인터메조 f단조 | 격렬하고 불안한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 |
| No.5 | 로만체 F장조 | 가장 밝고 서정적. 따뜻한 빛이 느껴지는 곡 |
| No.6 | 인터메조 eb단조 | 가장 어둡고 비장한 여운으로 마무리 |
③ Op.119 — 4개의 피아노 소품 (1893년)
| 곡번호 | 곡명 | 감상포인트 |
| No.1 | 인터메조 시단조 | 회색빛 고독이 짙은 브람스 말년의 깊은 내면 |
| No.2 | 인터메조 마단조 | 우아하고 부드러운 서정성 |
| No.3 | 인터메조 다장조 | 가장 밝고 경쾌한 춤곡 같은 분위기 |
| No.4 | 랩소디 내림마장조 | 강렬하고 결의에 찬 화려한 피날레 |
감상영상 및 추천 명반
라두 루프(Radu Lupu) :
과장 없이 자연스럽고 따뜻한 내면의 깊이가 전달되는 연주입니다. 처음 듣는 입문자에게 권합니다.
"루프의 연주는 이 곡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과장 없는 터치, 자연스러운 호흡, 그리고 깊은 내면의 울림. 브람스 인터메조의 정석이다." — Gramophone, 클래식 음반 전문지
추천 명반
- 레온 플라이셔 Late Brahms (Vanguard) — 오른손 부상 후 왼손만으로 녹음, 절제의 극치
- 글렌 굴드 Brahms Intermezzi (Sony) — 논란 많지만 독자적 해석
- 이리나 질버슈타인 (Irina Zilberstein): 더 내성적이고 음표 사이의 침묵을 살리는 연주. 고독한 정서가 잘 살아납니다.
- 백건우: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의 깊은 터치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연주입니다. 검색어: 브람스 인터메조 118-2 백건우
"굴드의 연주는 논란이 있지만 그 독자성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나치게 느리고 내성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브람스의 고독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 Sony Classical 라이너 노트 참조
마무리
브람스는 후기 낭만주의 절정의 음악가입니다. 이곡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가장 부드러운 자장가 같은 곡"이라고 할 만큼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하지만 작곡배경과 시기를 보자면 처음으로 클라라에게 악보전집을 보낼 만큼 클라라에게 40년간의 사무친 연정으로 음표를 통하여 그녀를 향한 사랑하는 감성을 담아 편지를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곡의 내면은 조용하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시적인, 혹은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흐느끼는 듯한 그 무엇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음악세계는 결코 화려하거나 격정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절제하고 인내합니다. 그러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합니다. 이런 면은 오히려 그의 표현을 더욱 깊게 각인시켜주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낙엽 쌓인 가을을 걷다 카페에서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씁쓸한 맛과 향으로 우울한 심정을 희석하고 달래주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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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람스교향곡 3번- 클라라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잔향
-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클라라에게 바친 사랑의 고백
- 22년을 기다린 환희, 브람스교향곡 1번 4악장
(최종업데이트 :2026.4.22)
※ 참고 자료: Johannes Brahms 전기 (Jan Swafford), 클라라 슈만-브람스 서신집 (Nancy Reich), Classic FM 브람스 인터메조 해설, 슈만,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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