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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클래식/명곡감상

베토벤 현악4중주 16번 — 무거운 질문, 밝은 응답

by 산책하는 곰 2026. 6. 18.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 현악 4중주 16번 4악장에 있는 문구입니다.

현악 4중주라는 장르를 평소에 가까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교향곡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피아노 소나타처럼 친숙하지도 않습니다.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 — 딱 네 개의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숨길 곳이 없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네 개의 목소리가 직접 부딪히고, 직접 대화합니다. 베토벤이 이런 현악 4중주를 통하여 왜 그런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대답을 해야 했을까요. 오늘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어두운 연주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주하는 현악4중주단
베토벤 현악4중주 16번 — 네 개의 목소리가 나누는 대화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 첫머리에는 베토벤이 직접 적어 넣은 문구가 있습니다.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굳힌 결심." 그리고 두 개의 동기 위에 각각 이렇게 썼습니다.

  • 무겁고 느린 첫 동기에는: Muss es sein? — "꼭 그래야만 하는가?"
  • 밝고 빠른 두 번째 동기에는: Es muss sein! — "그래야만 한다!"

이 문구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가정부에게 밀린 돈을 억지로 갚으면서 내뱉은 말이라는 우스운 설도 있고,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화해라는 무거운 해석도 있습니다. 베토벤 자신은 "어렵게 이루어진 결심"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을 뿐, 더 이상의 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듣는 사람의 것이 됩니다. 저는 이 악장을 들을 때마다 그 질문이 저를 향하는 것 같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이것이 내 운명인가. 무거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대답은 놀랍도록 밝습니다. 그래야만 한다 — 는 선언이 농담처럼, 장난처럼, 거의 익살스럽게 울려 퍼집니다. 자문자답하는 두 동기는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격렬하게 충돌하지만, 바이올린의 익살스러운 독백에 이어 단정하게 마무리됩니다.

이 곡은 네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후기 현악 4중주 중 규모가 가장 작은 곡이기도 합니다. 현악 4중주 13번처럼 악장 수가 하나씩 늘어가던 후기 사중주들과 달리, 마지막 16번은 다시 네 악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에 대해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정제된 형식입니다.

  • 1악장 Allegretto — 가볍고 유머러스합니다. F장조답게 밝게 출발하지만, 어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베토벤 특유의 익살이 배어 있습니다.
  • 2악장 Vivace — 짧고 빠릅니다. 스케르초 성격으로, 잠깐 스쳐 지나가듯 끝납니다.
  • 3악장 Lento assai, cantante e tranquillo — 이 곡의 심장부입니다. "느리고, 노래하듯, 고요하게"라는 지시어 그대로 잔잔하고 서정적입니다. 비통하지 않습니다. 슬픔을 다 받아들이고 난 뒤의 고요함입니다. 베토벤이 말한 "휴식과 평화를 위한 달콤한 노래"는 아마 이 악장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 4악장 —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그 질문이 등장합니다. F단조로 시작합니다. 장조 곡인데 마지막 악장이 단조로 열리는 것입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6번 F단조가 떠올랐습니다. 그 곡은 멘델스존이 누이 파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직후 울부짖듯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감정이 절제되지 않은 채 터져 나오는 순간들, 날카롭게 치솟는 바이올린 — 베토벤의 이 곡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갑자기 파고드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음형. 베토벤의 음악에는 가끔 그런 부분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곡 전체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장조로 마무리되지만 그 어둠의 기억은 끝까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느낌입니다.

빛바랜 악보 위에 손으로 적힌 독일어 문구 Muss es sein
베토벤이 마지막 악장 악보에 직접 적어 넣은 문구 "꼭 그래야만 하는가"

 

영상 시청하기: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 전악장

 

휴식과 평화를 위한 달콤한 노래

베토벤은 이 곡을 스스로 "휴식과 평화를 위한 달콤한 노래"라고 불렀습니다. 좀 의아합니다. 4악장에 그런 무거운 화두를 던지고, 조카 카를의 자살 시도로 큰 충격을 받은 그해 가을에 완성한 곡이 달콤한 노래라니.

그런데 사실입니다. 1악장은 가볍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합니다. 3악장은 느리고 서정적이지만 비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 — 그 무거운 질문과 밝은 대답이 교차하는 — 이 끝날 때 남는 감정은 체념이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가볍습니다.

이 나이에, 이 몸으로, 베토벤은 이미 많은 것과 화해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 라고 묻고, 그래야만 한다 — 고 웃으며 답할 수 있게 된 사람.

어둠 속의 장막이 걷히듯이

클래식은 들을수록 어둠 속에서 점차 사물이 보이듯 밝아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실내악은 그 성질이 더 강합니다. 처음엔 낯설고 막막하다가, 어느 순간 귀가 열리면서 이전엔 들리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곡도 그렇습니다. 아직 많이 들은 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매번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들립니다. 어떤 분은 이 곡을 듣고 마니아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이해됩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어둠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품은 채, 그것과 대치하지 않고 화해했다는 분석이 가장 와닿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래서 무거운 질문을 던지되, 그것을 삭제하지 않고 — 그 위에 밝은 응답으로 화답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 곡의 결말이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저는 이 곡을 듣고 난 후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이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마치 오랫동안 수행하는 수도승의 화두처럼 머리와 입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